‘스타일’은 책과 미니홈피에서 배웠다
요즘 MZ세대는 스타일을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스타일쉐어, 핀터레스트 같은 디지털 플랫폼에서 자연스럽게 소비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없던 2000년대 초반, 우리가 트렌드를 배우고 개성을 표현한 통로는 따로 있었다.
오늘은 패션잡지와 미니홈피 , 스타일의 교과서였던 '쎄씨', '쥬얼리박스' : 지금은 없어진 잡지와 1촌 파도타기의 문화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바로 ‘쎄씨’, ‘쥬얼리박스’ 같은 패션잡지와 싸이월드 미니홈피였다.
이 둘은 마치 현실과 디지털의 쌍두마차처럼, 패션과 정체성, 감성까지 모두 아우르던 ‘스타일 교과서’였다.
이번 글에서는 당시 10대~20대 초반의 감성과 문화가 녹아 있던 잡지와 미니홈피의 세계,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를 함께 돌아본다.
‘쎄씨’와 ‘쥬얼리박스’: 책장 속 감각의 전시장
* 10대들의 ‘입문서’, 쎄씨(CeCi)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잡지를 사는 일은 곧 유행을 앞서가는 일이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쎄씨’(CeCi)였다. 똑같은 교복을 입어도 누구는 더 예뻐 보였고, 거울 앞에서 따라 해보고 싶은 룩북, 메이크업 튜토리얼, 그리고 연예인 스타일 인터뷰는 모두 쎄씨에서 봤다.
표지 모델에는 신세경, 손예진, 정려원, 장나라 등 지금의 대세 스타들이 ‘신인’일 때부터 등장했고, 그들의 스타일은 잡지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특히 ‘쎄씨 캠퍼스’ 같은 코너에서는 일반 대학생들의 스타일을 소개하며 ‘우리도 따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패션’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 감성 과부하, 쥬얼리박스
쥬얼리박스는 쎄씨보다 한층 더 소녀 취향에 특화된 패션 잡지였다.
표지부터 반짝이는 큐빅 폰트와 화려한 색감, 수줍은 듯한 모델들의 포즈까지, 모든 것이 ‘여자아이의 감성’에 맞춰져 있었다.
핑크톤의 필기체 타이틀 일기처럼 구성된 감성 문장 손글씨 폰트와 마스킹 테이프 같은 레이아웃
이러한 디자인 감성은 훗날 미니홈피 꾸미기의 뼈대가 되었다.
* 부록도 패션의 일부였다
쎄씨나 쥬얼리박스는 단순히 잡지를 넘어 파우치, 스티커, 가방걸이, 헤어핀 같은 부록도 유명했다.
잡지를 사고 부록을 뜯는 순간, ‘유행을 소유한다’는 설렘이 있었고 친구들과 “너도 이거 받았어?” 하며 자랑하곤 했다.
미니홈피: 감성과 개성의 디지털 무대
* 나만의 공간, 싸이월드
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는 ‘개인의 미디어’ 개념을 처음 열어준 공간이었다.
지금의 SNS와는 달리, 미니홈피는 ‘자기만의 감성 아지트’였다.
스킨 배경 꾸미기, 사진첩에 셀카 올리기, BGM 설정 (윤하, 이승기, 브라운아이즈 등), 게시판, 일촌평, 다이어리
특히 배경음악은 감정을 대변하는 필수 요소였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로 나를 설명하는” 그런 방식이 지금의 플레이리스트 공유 문화와도 닿아 있다.
* 쎄씨 감성이 미니홈피로 이어지다
미니홈피의 스타일과 색감, 콘텐츠 구성은 잡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실제로 많은 미니홈피 운영자들이 쎄씨의 표지 색감이나 쥬얼리박스의 문구를 포토샵으로 스킨에 적용하거나, 일촌명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따뜻한 오후 햇살 같은 너”, “오늘도 나를 예쁘게” 같은 말은 쥬얼리박스 스타일의 대표 문구였다.
* ‘1촌 파도타기’의 문화
내 미니홈피를 보는 친구가 또 친구를 클릭하고, 그 친구의 일촌을 구경하고, 또 그 친구의 배경음악을 듣고…
이런 ‘1촌 파도타기’ 문화는 ‘좋아요’가 없던 시절 사람 간 연결의 독특한 형식이었다.
특히 멋진 스타일의 홈피를 발견하면 그곳에서 “스킨 정보 어디서 받으셨어요?” 같은 댓글을 남기고,
‘서로이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도 흔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영원한 유행의 뿌리
* 종이 잡지의 퇴장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잡지 소비는 급속히 감소했고, 쎄씨는 2018년을 끝으로 종이판 발행을 종료했다.
쥬얼리박스는 그보다 훨씬 이른 시기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이들이 남긴 영향력은 지금도 크다.
오늘날 유행하는 ‘Y2K 감성’, 레트로 스타일링은 당시 잡지의 미장센과 스타일링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쎄씨 특유의 직선적인 컷, 밝은 조명, 레이어드 룩은 지금의 하이틴 룩을 연상케 한다.
* 미니홈피의 유산
싸이월드는 2021년 재오픈했다가 2023년 다시 종료됐지만, 그 잔재는 여전히 이어진다.
프사(프로필 사진) 꾸미기, 배경음악 설정 문화, 댓글로 감정 나누기, 나만의 커버 이미지
이런 디지털 커스터마이징 문화는 지금의 카카오톡 프로필, 인스타 릴스 꾸미기, 텀블러, 피크닉 감성 인스타 계정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 감성과 스타일의 혼합 문화
잡지를 통해 배운 패션, 미니홈피로 표현한 감성. 이 두 가지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자기 표현과 자아 정체성의 시작점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잡지 한 권, 미니홈피 배경 하나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를 말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세련되진 않았지만, 그만큼 더 순수했고, 더 치열하게 나를 표현하던 시절이었다.
잊히지 않는 ‘디지털 감성 시대’의 기억
지금도 헌책방 어딘가에서 쎄씨나 쥬얼리박스의 낡은 책장을 넘기면, 그 시절의 향기가 그대로 배어 나온다.
CD케이스에 끼워둔 BGM 리스트, ‘이효리 따라잡기’ 코너, 그리고 싸이월드 스킨에 올라간 투명 PNG 아이콘…
그 시절 우리가 열광했던 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공감받고 싶은 마음, 예뻐지고 싶은 욕망,
그리고 누군가에게 멋져 보이고 싶었던 사춘기의 진심이었다.
언젠가 싸이월드처럼 쎄씨도 디지털 박물관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땐 우리도 아이패드가 아닌 다시 한 번 잡지 한 권 들고,
감성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