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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피디스크, CD-R의 시대 : “용량 때문에 파일 못 옮기던” 시절의 불편하지만 따뜻한 기술들

by 권보 2025. 5. 16.

저장공간도 ‘절약’하던 시절의 기억.
오늘날에는 단 몇 초면 수십 기가바이트의 파일을 클라우드에 올리고,
USB 하나에 웬만한 영화, 게임, 음악, 문서까지 전부 담아 다닌다.
하지만 90년대~2000년대 초반,
컴퓨터를 사용하는 우리에게 “파일을 옮긴다”는 건 하나의 대작업이었다.

오늘은 플로피디스크, CD-R의 시대 : “용량 때문에 파일 못 옮기던” 시절의 불편하지만 따뜻한 기술들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플로피디스크, CD-R의 시대 : “용량 때문에 파일 못 옮기던” 시절의 불편하지만 따뜻한 기술들
플로피디스크, CD-R의 시대 : “용량 때문에 파일 못 옮기던” 시절의 불편하지만 따뜻한 기술들

 

용량의 한계, 형식의 제약, 장비의 호환성,
모든 것이 발목을 잡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플로피디스크, CD-R, ZIP 드라이브 같은 매체들에 희망을 걸고 살았다.

그 시절의 저장매체는 단순한 기술 그 이상이었다.
복사, 굽기, 포맷, 포장, 그리고 ‘공CD’에 남은 여백을 고민하던 감성까지,
그 모든 추억을 오늘 다시 꺼내본다.

 

 

 

‘플로피디스크’의 시대 – 1.44MB의 정(情)

한때 컴퓨터의 필수품이었던 플로피디스크(Floppy Disk).
요즘 사람들에겐 저장 버튼 아이콘의 정체일 뿐이지만,
우리에겐 직접 만지고, 꽂고, 빼던 실체적인 저장매체였다.

* 3.5인치, 1.44MB, ‘파일 분할’의 기술
표준 플로피디스크의 저장 용량은 고작 1.44MB.
사진 한 장, 워드 문서 하나도 넘칠 수 있는 용량이지만,
그 안에 게임 실행파일, 리포트, 도트 이미지 등을 담아 옮기곤 했다.

용량이 부족하면 파일을 분할 압축해 여러 장의 디스켓에 나눠 저장해야 했고,
파일명.z01, 파일명.z02 같은 형태로 이어 붙이기도 했다.
이 방식은 복잡했지만, 마치 퍼즐을 맞추듯 파일을 조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 포맷과 불량 디스켓의 공포
플로피디스크는 한 번에 파일을 지우기 위해 ‘포맷(Format)’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하지만 운이 나쁘면 포맷 중 에러가 나서 아예 사용할 수 없게 되기도 했고,
불량 섹터가 생긴 디스켓은 저장은 되지만, 읽을 땐 “파일 손상됨” 메시지를 띄우며 절망을 안겼다.

또한 디스켓 한 장을 덮으려던 얇은 금속 슬라이드 커버,
지우개로 긁거나 펜으로 이름을 쓴 라벨지,
플라스틱 케이스에 꽂아 보관하던 습관도 잊을 수 없다.

* 소장과 교환의 문화
게임 파일, 음악 MIDI, 이미지 자료 등은 친구들과 플로피디스크로 교환했다.
교실 한구석, PC방 한 켠에서 “야, 이거 디스켓에 담아서 줄게”라는 말이 오갔고,
각자의 이름을 써놓은 디스켓 파우치도 일종의 ‘개인 라이브러리’ 역할을 했다.

 

 

 

CD-R과 CD 굽기의 전성시대

플로피디스크가 한계를 드러내던 무렵,
우리는 700MB의 거대한 용량을 자랑하는 CD-R(CD-Recordable)을 맞이하게 된다.
이 매체의 등장은 말 그대로 데이터 저장의 혁명이었다.

* ‘공CD’와 CD 굽기 프로그램의 등장
CD-R은 한 번만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저장매체로, ‘굽기(burning)’라는 용어가 일상화됐다.
Nero, Roxio, CloneCD 같은 소프트웨어로 직접 데이터를 선택하고,
‘쓰기 속도’를 조절하고, 마지막엔 ‘디스크 굽기 완료!’ 메시지를 보며 쾌감을 느꼈다.

CD 굽는 속도를 너무 높이면 에러가 나서,
“8배속 말고 4배속으로 구워라”는 팁이 널리 퍼졌던 것도 이 시절이다.

* 음악 CD, 영화 CD, 데이터 CD
CD는 단순 저장매체를 넘어, 콘텐츠 소비의 핵심이 되었다.

MP3 CD: 한 장에 수백 곡을 담을 수 있어, 자동차 CD플레이어나 MP3P에 넣기 좋았다.

VCD/SVCD: 영화나 드라마를 저장해 PC나 플레이어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데이터 백업: 사진, 보고서, 게임 설치파일 등을 ‘백업용’으로 따로 보관했다.

많은 이들이 직접 커버를 프린트하고, CD에 제목을 적고, CD 지갑에 종류별로 정리하기도 했다.

* CD-RW와 ‘지우고 다시 굽기’의 욕망
CD-R이 쓰기 전용이었다면, CD-RW는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는 버전이었다.
당시엔 비쌌지만 용량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탐냈던 매체 중 하나였다.

 

 

 

저장매체가 바꾼 일상, 감성과 기술의 경계

저장매체는 단순히 기술의 도구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 습관, 정보 공유 방식, 감성을 좌우했다.

* ‘용량’에 대한 끊임없는 타협
요즘은 ‘1TB가 모자라’는 소리를 쉽게 하지만,
당시엔 1.44MB, 700MB 용량 안에서
어떤 파일을 넣고 어떤 걸 뺄지 고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최신 게임 설치파일이 3GB’라는 말을 들으면,
‘도대체 이걸 어떻게 옮겨?’라며 혀를 찼고,
몇 장의 CD로 쪼개 굽거나 하드디스크 외장화를 고민하기도 했다.

* 오프라인 교환과 인간미 있는 공유
파일 공유가 클라우드 기반이기 전에는,
‘네가 이거 줄 테니까 나도 그 음악 줘’,
‘이거 플로피에 담아서 내일까지 학교에 가져와’ 같은
직접 만남 기반의 정보 교류가 자연스러웠다.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 우리는 기술이 아닌 인간 중심의 디지털 경험을 누렸다.

* 이동성보다 연결성의 시대
요즘처럼 모든 것이 ‘인터넷 연결 기반’이 아니었기에,
저장매체는 곧 유일한 파일 이동 수단이었다.
플로피디스크를 꽂아 부팅하는 ‘도스용 고스트 설치 디스켓’부터,
동아리에서 발표 자료를 담아가는 ‘CD-R’,
집과 학교 사이를 오가며 직접 들고 다닌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자료의 소중함과 준비의 철저함을 배웠다.

 

 

 

USB가 가져오기 전, 저장매체가 주던 감성.
지금은 USB와 클라우드, SSD, NAS까지 모든 것이 빠르고 안전하다.
하지만 그 옛날, 저장매체 하나에 의지해 자료를 복사하고 옮기던 시절은
단지 ‘불편한 시절’이 아닌, 정성과 기다림, 조심성의 시대였다.

플로피디스크 한 장에 담긴 보고서,
CD 한 장에 담긴 음악과 사진,
굽기 실패로 버려진 공CD 몇 장,
그 모든 흔적은 오늘날 우리의 디지털 기억보다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혹시 지금도 서랍 속에 먼지 낀 디스켓 하나,
아직도 켜지는 CD-ROM 드라이브가 있다면,
그 시절의 데이터를 다시 열어볼 수 있을까?
그 속엔 잊고 있던 어느 한 순간의 감정,
그리고 ‘디지털도 따뜻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