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특별했던 시절.
지금은 스마트폰 하나면 음악이든 영상이든 스트리밍으로 실시간 감상이 가능하다. 유튜브, 멜론, 스포티파이 같은 서비스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음악이 따라다니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되기 전, 음악은 디지털화의 초입에서 '파일로 소유'해야 했고, 그 음악을 듣기 위해 전용 기기를 사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MP3 플레이어 전성시대: 아이리버 vs 코원 vs 옙, 단순한 음악 감상기에서 개성의 아이콘으로 진화했던 소형 기기들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그 중심에는 바로 MP3 플레이어가 있었다.
작고 가벼운 기기 하나에 수십 곡, 많게는 수백 곡을 넣어 다닐 수 있다는 건 당시로서는 엄청난 혁명이었다. 그리고 그 MP3 플레이어는 단순한 음악 감상 기기를 넘어서, 개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아이리버는 감성', '코원은 음질', '옙은 디자인'처럼 브랜드마다 취향이 갈렸고, 친구들과 비교하며 자신만의 기기를 자랑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오늘은 200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 MP3 플레이어 시장의 황금기를 함께 돌아보자.
‘음악이 담긴 USB’ 같은 존재: MP3의 태동기
MP3 플레이어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음악은 CDP(휴대용 CD플레이어), 또는 카세트 테이프로 듣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MP3라는 포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었다. 수십 MB의 용량만 있으면 CD 한 장 분량의 음악을 한 파일로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CD를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초기의 MP3 플레이어는 정말 단순한 USB 형태의 기기였다. 디스플레이가 없거나 1~2줄짜리 흑백 LCD로 곡명이 스크롤되었고, 용량은 32MB, 64MB 정도가 기본이었다.
64MB면 약 15곡, 겨우 한 앨범을 넣을 수 있었지만 당시엔 그 자체로도 충분히 혁신이었다.
이때는 음질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곡을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버스 안에서, 학교 가는 길에, 심지어 수능 시험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도 MP3는 늘 함께였다. 음악이 삶의 배경음악이 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다.
아이리버 vs 코원 vs 옙: 전성기의 3대장
2000년대 초반, MP3 플레이어는 ‘누가 더 작고 가볍고 예쁜가’, 그리고 ‘음질이 좋은가’로 경쟁했다.
이 시기의 국내 MP3 시장은 아이리버(IRIVER), 코원(COWON), 옙(YEPP) 세 브랜드가 삼파전을 벌이며 각자의 강점을 내세웠다.
🔹 아이리버(IRIVER): 감성과 디자인의 아이콘
아이리버는 당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브랜드였다.
감성적인 디자인, 깔끔한 UI, 독특한 컬러와 재질 덕분에 'MP3계의 애플'이라 불릴 정도였다.
대표 모델로는 iFP 시리즈, H10, Clix 등이 있었고, 특히 iFP-100 시리즈는 ‘물방울 디자인’으로 사랑받았다.
디자인 외에도 ‘도트 매트릭스 LCD’나 색감 있는 OLED 화면 등 신기술을 빠르게 반영했다.
🔹 코원(COWON): 음질에 진심이던 브랜드
코원은 '음질은 무조건 코원'이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JetEffect라는 자체 음장 기술, 다양한 이퀄라이저 설정, 고음질 파일 지원 등으로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높은 신뢰를 얻었다.
다소 투박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음악 자체를 중요시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늘 ‘성능으로 이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 모델은 iAUDIO 시리즈, D2, U5 등이 있으며, 특히 D2는 터치스크린과 동영상 지원으로도 주목받았다.
🔹 옙(YEPP, 삼성): 트렌디함과 대중성의 절묘한 균형
삼성의 YEPP은 광고 마케팅과 디자인에서 강했다.
당시 모델이었던 옙 T5, T6, 그리고 YP-K3, K5 시리즈는 슬림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편리한 조작법, 그리고 ‘삼성’이라는 브랜드 신뢰도가 강점이었다.
음질과 기능은 아이리버, 코원보다는 다소 보수적이었지만, 광범위한 유통망과 접근성 덕분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각 브랜드마다 팬층이 있었고, “아이리버는 예쁜데 비싸”, “코원은 음질은 좋은데 조작이 어려워”, “옙은 무난하게 좋다” 같은 이야기가 마치 축구팀 응원처럼 오갔다.
음악 이상의 의미: MP3 플레이어가 만든 문화
MP3 플레이어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었다.
그 시절의 MP3는 ‘내가 듣는 음악이 곧 내 정체성’이 되던 시절의 아이콘이었다.
기기에 자기가 좋아하는 곡을 넣고, 가사 파일을 같이 넣어 따라 부르기도 하고,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 OST나 인디밴드 곡을 친구에게 ‘추천’해주던 방식이 바로 MP3 파일 공유였다.
또한, MP3에 넣을 음악을 찾기 위해 직접 음반을 사거나 리핑을 하거나, 웹하드에서 내려받는 행위 자체도 하나의 문화였다.
특히 ‘폴더 정리’에 집착하던 습관, 음악 장르별로 폴더를 나누고 폴더 안에 앨범 커버를 넣는 디테일은 지금의 플레이리스트와 유사하지만, 그 노력의 강도는 훨씬 컸다.
MP3의 유행은 이어폰 브랜드에 대한 관심, 음악 취향 공유 문화, 그리고 블로그·싸이월드에서의 배경음악 사용 등 수많은 디지털 감성 요소로 연결됐다.
그 시절 음악은 단지 듣는 것을 넘어서 ‘가지고 다니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MP3는 사라졌지만, 그 시절 음악은 남아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아이팟이 세계를 장악하면서 국내 MP3 시장은 점차 사라졌다.
2010년대를 지나며 대부분의 브랜드는 생산을 멈췄고, 이제는 추억 속 제품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리버의 물방울 디자인, 코원의 딥한 음질, 옙의 세련된 조작 버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은 지금도 우리 곁에 있지만, 그 시절의 음악은 더 개인적이고 더 감성적이었다.
MP3는 단순히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그 사람의 취향과 감정을 담고 다니던 하나의 일기장이었다.
혹시 집 서랍 어딘가에 MP3 플레이어 하나쯤 잠들어 있지 않은가?
다시 꺼내 충전해보면, 어쩌면 잊고 있던 2000년대의 나와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