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던 시대, 놀이터가 세상의 중심이었다.
지금 아이들은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고, 유튜브를 보며 논다. 놀이터보다 더 자극적인 것이 손 안에 있으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우리 세대에게 ‘놀이터’는 세상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경기장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오늘은 놀이터의 영웅들: 땅따먹기, 자치기, 고무줄놀이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기 전, 혹은 일요일 오전에 만난 친구들과의 놀이터 한 판. 그곳에서는 나이도, 반도 중요하지 않았다. 실력이 곧 서열이었고, 땅 한 칸, 고무줄 한 단계, 자치기 한 방울이 그날의 영웅을 결정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땀에 절은 교복 셔츠는 바로 승리의 훈장이었고, 부모님이 부르기 전까진 집에 갈 이유가 없었다.
오늘은 90~00년대 놀이터 문화의 핵심이었던 땅따먹기, 자치기, 고무줄놀이를 중심으로, 그 시절 우리가 얼마나 진지하게 놀았는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우정과 경쟁, 창의성을 돌아본다.
땅따먹기: 손끝에서 벌어지는 전략 게임
땅따먹기는 단순한 놀이 같지만 사실 놀이터판 전략 시뮬레이션이었다.
주로 콘크리트 바닥이나 흙바닥에 선을 긋고, 돌이나 콩알탄 조각, 지우개, 문구점에서 산 조그만 플라스틱 조각 등을 이용해 상대방의 영역을 침범하는 방식이다.
▶ 규칙도, 전략도 지역마다 다양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영역에서 돌을 튕겨 상대방 영역 안으로 넣으면 해당 부분을 뺏는 방식인데, 세부 규칙은 동네마다 달랐다. 어떤 동네는 세 번 튕기면 실격, 어떤 동네는 경계선 접촉도 인정, 어떤 곳은 “백도”라 불리는 회수 기회까지 있었다.
심지어 일부 아이들은 자신만의 '돌 감기 기술'이나 ‘회전 넣기’를 익혀가며 거의 선수처럼 플레이하기도 했다.
▶ ‘내 땅’의 상징성과 자존심
게임이 진행되며 점점 넓어지는 자신의 구역을 보며 느끼는 쾌감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다.
“야, 저기까지 내 땅이야!” 하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일도 많았고, 한 번 지면 ‘오늘 하루 기분이 안 좋다’는 친구도 있을 정도였다.
땅따먹기에는 승패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얼마나 공간을 인식하고, 경계와 규칙을 지키며,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학습의 장이었다.
자치기: 타격감과 손맛의 향연
자치기는 막대기 2개와 넓은 공간만 있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놀이지만, 그만큼 스릴과 타격감이 탁월했다. 짧은 막대를 튕겨 공중으로 띄우고, 긴 막대로 쳐서 멀리 보내는 방식인데, 소리부터가 통쾌했다.
“딱!”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자치기의 곡선을 보는 건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 막대기부터 스킬까지 ‘장비빨+실력빨’
문방구에서 자치기 전용 막대를 팔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나뭇가지나 학교 앞에서 직접 깎아 만든 막대기를 썼다.
막대기의 길이, 무게 중심, 손에 익는 감촉까지 세세하게 따졌으며, 친구들끼리 "내 자치기가 더 날아간다"며 서로의 무기를 시험해보기도 했다.
기술도 다양했다. 직선으로 치는 '쌍심지 날리기', 한 바퀴 돌려서 타격하는 '돌려치기', 한 손으로만 컨트롤하는 ‘고수용 기술’ 등 일종의 기술전도 존재했다.
▶ 자치기의 위험성과 열정
한창 열심히 자치기를 하다 보면 날아가는 막대기가 옆 사람 머리에 맞기도 했다. 간혹 다치기도 했고, 날아간 자치기가 아파트 화단이나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모두 다 같이 수색 작전을 벌였다.
부모님이 “그놈의 자치기 좀 그만해!”라고 혼을 내시던 것도 지금은 따뜻한 기억이다.
고무줄놀이: 단순한 놀이를 넘어선 예술
‘고무줄놀이’는 주로 여자아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지만, 사실 동네의 무용수이자 창작자들이 활약하던 영역이었다.
고무줄을 허리 높이로 맞춰놓고, 노래와 함께 다양한 동작을 하며 뛰는 놀이인데, 단순한 놀이를 넘어서 리듬과 균형감, 창의성이 총동원되는 활동이었다.
▶ 고무줄의 단계: 무릎, 허리, 겨드랑이, 머리까지
처음에는 무릎 높이에서 시작해서 점점 높아진다. 허리, 가슴, 겨드랑이, 심지어 머리 위 높이까지 도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쯤 되면 점프력과 순발력도 요구되었다.
한 단계라도 더 올라가는 게 동네에서 ‘고무줄 고수’로 인정받는 길이었다.
▶ 창의력과 패션의 융합
고무줄놀이의 백미는 바로 노래와 동작의 조합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전통 구호뿐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가요나 광고 카피를 넣어 가사를 만들고, 그에 맞춰 동작도 새롭게 창조했다.
이 놀이는 일종의 창작 공연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안무를 짜고 팀플레이를 하며 공동체의식을 키워나갔다.
심지어 고무줄의 색깔이나 굵기, 본인의 복장까지도 놀이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요소로 여겨졌으며, ‘고무줄 마스터’로 불리는 아이들은 인기도 상당했다.
놀이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들.
지금의 어린이들은 체육관에서 스포츠를 배우고, 스마트폰 앱으로 친구들과 대화하지만, 우리 세대는 놀이터에서 ‘진짜 놀이’를 통해 사람 사이의 거리, 감정, 룰, 경쟁, 협력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놀이는 모두 몸을 움직이고, 머리를 쓰고, 사람들과 부딪히는 과정이었다. 스마트폰 없이도, 카드게임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풍부한 놀이 세계를 창조해냈다.
땅따먹기에서 영토 확장의 쾌감을, 자치기에서 집중력과 타격의 스릴을, 고무줄놀이에서 협업과 예술의 기쁨을 맛봤다.
그 시절 놀이터에서의 추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를 만든 작은 사회의 축소판이었다.
한때는 그렇게 뛰고 놀던 우리가, 이제는 아이들에게 “밖에 나가 놀아라”고 말하는 입장이 되었지만, 가끔은 그 시절의 우리처럼 땀 흘리며 놀던 순수함을 되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