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를 사면 게임이 딸려오던 기적
오늘날 게임을 구매하고 즐기는 방식은 매우 간편하다.
스팀, 에픽스토어, 플레이스테이션 스토어, 모바일 앱스토어에 접속해서 게임을 클릭 한 번으로 다운로드하면 된다.
공략은 유튜브나 트위치, 디스코드에서 바로 검색이 가능하다.
하지만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 우리에게 게임이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었다.
오늘은 게임CD 부록으로 게임 잡지 샀던 시대 : ‘PC챔프’, ‘게임라인’ 등을 통해 무료 게임과 공략을 얻던 시절에 대해 알아볼 예정이다.
인터넷 속도는 느렸고, 정식 게임을 구입하는 건 용돈으로는 감당이 안 되던 시절.
그때 한 줄기 빛처럼 존재하던 것이 바로 '게임 잡지'였다.
《PC챔프》, 《게임라인》, 《게임매거진》, 《PC파워진》 같은 잡지는 단순히 글을 읽는 매체가 아니었다.
부록으로 제공된 CD-ROM이 진짜 주인공이었다.
무료 게임, 데모 버전, 패치 파일, 공략집, 체험판이 담긴 CD는 우리에게 마치 보물상자 같은 존재였다.
이번 글에서는 CD를 얻기 위해 잡지를 사던 시절,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추억들을 소환해 본다.
공짜 게임의 보고: 잡지 부록 CD의 황금기
* CD 한 장에 담긴 '세상의 모든 게임'
지금은 너무 당연한 ‘무료 배포’ 개념이 이 시절에는 CD-ROM을 통해 오프라인으로 구현되었다.
잡지 부록으로 딸려오는 CD에는 다음과 같은 콘텐츠가 담겼다:
게임 데모: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퀘이크 등 대작의 체험판,
공짜 게임: 테트리스, 퍼즐버블, 붕붕붕 자동차 게임 같은 캐주얼,
쉐어웨어/프리웨어: 제작자가 배포를 허용한 인디게임,
게임 유틸리티: 세이브 에디터, 게임 트레이너, 맵팩,
* 패치와 한글화 파일: 외국 게임을 한글로 즐길 수 있게 해준 희귀 자료.
당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 게임을 구하려면 인터넷에서 내려받기도 어려웠고, 상점에서 정품을 사기엔 너무 비쌌다.
그런 상황에서 잡지 한 권 값으로 다양한 게임을 ‘정당하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혁명적인 경험이었다.
* 불법복제와 ‘복사방지’ CD
당연히 문제점도 있었다. 일부 잡지 부록에는 정품이 아닌 크랙 버전이 포함되거나,
‘쉐어웨어’라면서 사실상 풀버전이었던 경우도 있었고, 잡지사끼리 부록 수록 게임을 두고 라이선스 충돌도 일어나곤 했다.
그래서 일부 잡지는 자체적인 복사방지 기술을 CD에 심어놓기도 했다.
실행 시 인증 코드가 필요하거나, CD를 드라이브에 넣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결국 노하우 공유를 통해 우회했고, 이런 ‘편법’조차도 커뮤니티의 일부로서 큰 재미를 주었다.
공략이 지배하던 시절: 활자로 즐기던 전투
* 유튜브 없는 시대의 정보 획득법
요즘은 게임을 하다가 막히면 바로 유튜브나 커뮤니티에서 검색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문서화된 공략이 유일한 정보원이었다.
캐릭터 육성 트리, 맵별 숨겨진 아이템 위치, 보스전 전략, 멀티플레이 팁, 공식과 같은 수치 기반 정보
이 모든 것을 게임 잡지에서 제공했다.
《게임라인》과 《PC챔프》는 공략 정보를 도표, 일러스트, 스크린샷으로 정리했고, 때로는 독자의 제보를 받아 정기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오타, 오류조차도 추억이었다
가끔 잘못된 정보가 실리기도 했지만, 그 오타 하나조차도 친구들 사이에선 “야, 이거 진짜 맞냐?”며 논쟁을 유발하는 소재가 되었다.
또한, PDF나 검색 기능이 없었기에 공략을 보려면 책장을 넘기고, 책갈피를 꽂아가며 직접 찾아 읽어야 했다.
그 감각은 종이책이 줄 수 있는 몰입감이기도 했다.
* 팬심이 담긴 ‘편집자 칼럼’
당시 잡지에는 에디터 칼럼도 인기가 많았다. ‘OO기자의 넋두리’, ‘OO의 편집후기’ 같은 공간에는
편집자의 사적인 이야기, 회사 사정, 다음달 예고 등이 실려 있었고, 독자 입장에서는 게임계 내부 이야기를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잡지를 통해 형성된 게임 커뮤니티 문화
* 독자 엽서와 후기란
잡지 후반부에는 늘 독자 엽서란, 후기 게시판, 질문 코너가 있었다. 이곳은 말하자면 오프라인 게시판이자 포럼 같은 곳이었다.
“○○ 게임 깨는 법 알려주세요!”, “이번 부록 CD에 3번 파일 왜 안 돼요?”, “저는 부산 ○○초등학교 ○○인데요, 이 게임 너무 재밌었어요!”
이런 내용은 지금 보면 순수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독자의 글이 실리면 이름이 적히거나 간단한 상품(마우스패드, 스티커, CD정리함 등)이 발송되기도 했다.
*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확장
이후 PC통신이 확산되면서 게임잡지와 연계된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의 동호회도 활발해졌다.
잡지에서 공략을 보다가 “더 많은 공략은 하이텔 GO! CHAMP” 같은 문구를 보고 모뎀을 연결하던 기억, 많은 이들이 공유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훗날 루리웹, 인벤, 디시게임갤러리 등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즉, 잡지 문화는 한국 게임 커뮤니티의 원형이기도 했다.
종이 잡지가 남긴 낭만의 유산
게임잡지의 전성기는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급격히 저물었다.
인터넷 속도의 개선, 정품 다운로드 플랫폼의 등장,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한 실시간 공략 제공은 잡지의 필요성을 빠르게 줄였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게임잡지 특유의 레이아웃, 활자 냄새, CD 표면의 반짝임, 편집자의 농담, 그리고 잡지를 펼치던 손끝의 설렘이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다.
어쩌면 지금도 누군가는 책장 깊숙이 넣어둔 《PC챔프》 한 권을 꺼내어 낡은 CD를 바라보며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이 시디… 아직도 돌아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