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釜山廣域市, 영어: Busan Metropolitan City)는 한반도 남동부에 위치한 광역시이다.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자 영남권의 중심 도시이며, 대한민국 최대의 해양 도시로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과 물류 산업이 발달하였다. 일본과는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시청 소재지는 연제구 연산동이며, 행정구역은 15구 1군이다. 부산의 역사는 동래와 부산포의 두 지역으로부터 유래하였다. 통일신라 시대부터 동래군이 설치되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첫 전투인 부산진 전투와 동래성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일본인의 통상교류가 이루어지는 왜관이 자리한 고을이자 조선 통신사의 출발지였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인천, 원산과 함께 처음으로 개항한 도시였으며, 부산항의 정비와 함께 본격적인 항구도시로 발전했다. 6.25 전쟁 당시 임시 수도로서의 역할을 하였으며, 공업과 무역시설의 발전과 함께 1963년 정부 직할시를 거쳐 1981년 부산직할시 (현 광역시)로 승격되었다. 21세기 들어 2002년 FIFA 월드컵과 2002년 아시안 게임, 2005년 APEC 정상회담 등의 국제행사를 유치하였으며, 대한민국의 대표 국제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고 있다. 《태종실록》(1431년)에 富山이라는 이름이 처음 보이며[2] 《경상도지리지》(1425년) , 《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경상도 속찬 지리지(1469년) 따위에 “동래부산포”라 하였고, 1471년 편찬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동래지부산포”라 하고, 같은 책 삼포왜관도에도 “동래현 부산포”라는 기록이 있다. 이때 부산포는 “부자 富”를 썼다. 1470년(성종 1년) 12월 15일의 성종실록에 釜山이 처음 나타나는데, 1474년 4월 남제가 그린 부산포지도에는 여전히 富山이라 쓰고 있어 이 시기는 두가지 표기가 같이 쓰였다. 그러나 이후 기록은 부산포(釜山浦)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부산의 지명 변천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동국여지승람(1481년)이 완성된 15세기 말엽부터, 釜山이라는 지명이 일반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 산천조에 보면, “釜山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 지역이 중심지였음)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같이 일렀는데, 그 밑이 곧 부산포이다. 항거왜호가 있는데 북쪽 현에서 거리가 21리다.”라고 하여 산 모양이 가마꼴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다. 그 후 기록들은 이를 그대로 인용하여 釜山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동래부지(1740년) 산천조에 “부산은 동평현에 있으며 산이 가마꼴과 같으므로 이 같이 일렀는데 밑에 부산, 개운포 두 진이 있고, 옛날 항거왜호(恒居倭戶)가 있었다.”라고 하였고, 동래부읍지(1832년)에도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보아 동국여지승람 편찬 이전에는 富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어 오다가 이후 어느 시기에 釜山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1643년(인조 21년)에 통신사 종사관으로 일본에 건너간 신유의 해사록에 실려 있는 “등부산시”(登釜山詩)에 “산 모양이 도톰하여 가마와 같고 성문이 바다에 임하여”라고 한 구절이 나온다. 이때 부산진성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북쪽의 증산을 둘러싸고 있는 정공단 자리에 성문이 있어 성문 바로 아래가 바다와 접해 있었으므로 이 시문에 나오는 산은 좌천동의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18세기 중엽에 변박이 그린 “왜관도”를 보면 이 증산을 점초(点抄)하여 “부산고기”(釜山古基)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구 수정동에서 산을 넘어 부산진구 가야동으로 통하는 고개를 “가모령”이라고 한다. 이 가모(可牟)·감(枾)은 가마를 즉 “가마”(釜)를 뜻하는 것으로 가모령·감(枾, 嶺)은 한국의 방언을 한자로 차용한 것으로 가마재·가마고개(釜峙), 즉 부산재(고개)를 뜻한다. 그리고 고로(古老)들은 증산을 시루산이라고 하는데 시루(甑)와 가마(釜)는 같은 취기(炊器)로 금속성의 가마가 나오기 전에는 동일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이상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볼 때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다"라고 한 가마꼴의 산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뒤에 있는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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